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 (문단 편집) === 교섭 통상 사무 아문 참판으로서 === 묄렌도르프는 새로 부임한 [[미국]] 영사를 맞이하고, [[영국]], [[독일]]과의 재협상[* 양국은 청이 맺어준 조약이 [[일본]]의 조약에 비해 불리하다고 불만을 표하였다.]을 수행하였다. 또한 [[이탈리아]], [[러시아]]와도 조약을 맺고 [[프랑스]], [[오스트리아]]와도 조약 체결을 준비하였다. 그러나 [[갑신정변]] 이후 묄렌도르프는 본인 커리어에 치명타가 될 조약을 준비하였다. 고종의 인아거청책[* 러시아를 끌어들여 청을 견제한다는 계책.]의 시행자가 되어, 갑신정변의 수습을 위해 일본에 갔다가 러시아와 밀약을 맺으려 시도했던 것. 이것이 제1차 조러 밀약설이다.(사실 묄렌도르프의 생각이기 이전에 고종의 생각이기도 했다.) 이 밀약에는 조선은 러시아에 [[영흥]][[만]](곧 [[원산]])을 조차하고, 러시아는 조선에 [[장교]]와 [[부사관]]을 파견해 조선군 육성을 돕기로 하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. 그러나 이에 영국이 강하게 반발하여 [[거문도 사건]][* 당시 [[거문도]]는 동양의 유용한 항구 입지로 주목받는 곳이었다.]을 일으키고, 이홍장도 격분하였으며 일본도 반발하였다. 결국 이 조약으로 묄렌도르프는 청국에 소환당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